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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사와 왕을 괴롭힌 질병 그리고 마지막 황후

by Cozze 2023. 12. 5.

목차

    조선시대의 왕은 천명을 받아 나라를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 받은 신성한 존재이자 나라의 최고 권력자였다. 그리하여 왕은 국가 목적 또는 공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행하는 정치나 일을 하는 행정권, 법률을 만들어 정하는 입법궈느 법을 적용하여 재판하는 사법권 등 권력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왕들은 궁궐에서 최고의 음식을 먹고 최고의 의사를 곁에 두었지만 건강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대체 어떤 질병이 천하를 다스리는 왕들을 괴롭혔던 것일까? 또한 조선의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 황후 윤씨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왕의 권한과 삼사의 기능이란 무엇일까?

    조선은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아 중앙 집권적인 양반 관료 체제를 이루고 있었다. 즉 왕이라도 유교에 어긋 나는 행동을 할 수 없었으며, 지배층인 양반들과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유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인륜을 저버렸다는 이유로 왕위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또한 조선 시대에는 왕의 권한을 견제하는 기관인 삼사가 있었으며, 삼사는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을 합하여 부르는 말로, 조선 시대 최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 하는 일이 정해져 있었다.

     

    사헌부에서는 정치를 논의하고 관리의 잘못된 행위를 조사하여 그 책임을 묻는 일을 했으며, 사간원에서는 왕이 정치를 펴 나가는 데 잘못된 점이 있으면 고치도록 이르는 일을 했다.

     

    홍문관은 궁궐 내에 있는 책과 문서를 관리하고 왕의 자문에 응하는 일을 했다. 이처럼 삼사는 임금에게 직언할 수 있는 언론 기관으로 잘못된 정치에 대한 비판적인 기능을 수행하였다.

     

    조선 시대 왕들의 질병

    대부분의 왕들은 비만, 당뇨병, 고혈압 등으로 고생했는데, 그중에서 유독 괴롭혔던 것은 종기와 눈병이었다. 그런데 왕의 업무 특성을 살펴보면 이러한 질병의 원인을 찾을 수가 있다.

     

    왕은 주로 앉아서 업무를 처리하고, 이동할 때에도 가마를 이용했기 때문에 운동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주된 업무가 공문서와 상소 등을 읽는 것이다 보니 눈에 무리가 가는 것도 당연한 논리 였다.

     

    또한, 과도한 업무량과 왕으로서의 책임감으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건강을 해친 원인 중 하나였다. 이렇듯 여러 질병들은 왕의 직업적 특성으로 인해 생긴 일종의 직업병이었다.

     

    한글을 창제하고 과학 기술의 발전을 이루는 등 많은 업적을 남김 제 4대 임금 세종은 그 업적 만큼이나 여러 질병을 앓았다. 정신적 과로 때문에 생긴 담병이 있었고, 갈증에 시달려 하루에 물 한 동이를 넘게 마셨다는 것으로 보아 당뇨병도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각기병으로 다리가 붓고 관절이 아파 제대로 걷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문종, 중종, 효종, 숙종, 정조 등이 종기로 고생하였고, 세조는 피부병과 관절 통증, 광해군은 병치레가 잦아 침을 맞는 일이 많았고 눈병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조선의 역대 왕 27명 중에서 예종과 헌종은 20대에, 문종, 인종, 명종, 현종, 경종, 철종은 30대에 세상을 떠났다. 반면 왕 중에서 83세로 가장 장수한 영조는 평소 소식을 하였다고 알려졌다.

     

    옥새를 감춘 순정효 황후

    조선의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 황후 윤씨는 제27대 임금인 순종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1904년에 순정의 첫번째 황태자비인 민씨가 세상을 떠나자, 1906년에 13세의 나이로 황태자비에 책봉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순종이 황제에 올라 황후가 되었다.

     

    1910년에 어전 회의에서 친일파 대신들은 순종에게 한일 병합 조약에 도장 찍을 것을 강요했다. 한일 병합 조약은 대한 제국의 통치권을 일본에 넘겨주고 합병을 수락한다는 내용으로, 일본이 우리나라를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조약이었다.

     

    국권을 강탈당할 위기에 처한 이때, 순정효 황후는 병풍 뒤에 숨어서 회의를 엿듣고 있었다. 그리고 친일파 대신들이 순종에게 한일 병합 조약의 체결을 강요하자, 이를 막기 위해 옥새를 치마 속에 감춰 버리고는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친일파였던 순정효 황후의 큰아버지인 육덕영에게 옥새를 강제로 빼앗기고 말았다. 이후 순정효 황후는 순종이 세상을 떠난 뒤 불교에 귀의하였고, 1966년에 창덕궁 낙선재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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